시리즈: 세계와 무역사 · 개항과 근대 · 5편
← 4편 강화도조약에 관세가 없었던 이유
인천 차이나타운은 1884년 청나라 '조계'가 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됐습니다. 조계는 남의 나라 항구 안에, 외국이 자기 규칙으로 다스리던 구역이에요. 그 원조는 40년 앞서 생긴 상하이 조계였습니다.
주말에 짜장면 먹으러 가는 인천 차이나타운. 빨간 등이 걸린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문득 궁금해집니다.
왜 하필 여기일까요? 서울도 아니고, 바닷가 언덕 한쪽에.
답은 140여 년 전 지도에 있습니다. 그 시절 이 언덕엔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었거든요. 선 이쪽은 청나라 구역, 저쪽은 일본 구역. 조선 땅인데 조선 규칙이 잘 통하지 않는 곳이었어요.

1880년대 인천 청나라 조계 거리, 지금의 차이나타운 자리 (AI 생성 이미지)
이런 구역을 '조계'라고 불렀습니다. 4편에서 조선이 관세 하나 제대로 못 걷고 문을 열었다고 했잖아요. 오늘은 한 발 더 나간 이야기입니다. 세금이 아니라 동네를 다스리는 권한까지 남에게 넘어간 이야기요.
조계지란? 아파트 단지 안의 '딴 나라'
조계(租界)는 한자 그대로 '빌려준 경계'라는 뜻이에요. 땅을 빌려주고, 그 안의 일은 빌린 사람들이 알아서 하게 둔 구역이죠.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우리 아파트 단지 한쪽에 동 몇 개를 외국인에게 세줬어요. 그런데 그 동에는 관리사무소도, 경비도, 규칙도 따로 있습니다. 우리 관리소장은 들어가지도 못하고요.
세는 우리가 받는데, 정작 그 안의 주인은 우리가 아닌 거죠.
이 제도는 조선에서 처음 생긴 게 아닙니다. 원조는 중국 상하이였어요.

1860년대 상하이 황푸강변 조계 거리 (AI 생성 이미지)
원조는 상하이, 시작은 영국 상인들의 '동네 규칙'
1차 아편전쟁에서 진 청나라는 1842년 난징조약으로 항구 5곳을 엽니다. 상하이도 그중 하나였어요.
영국 상인들이 몰려왔습니다. 문제는 살 곳이었죠. 그래서 1845년, 청나라 관리와 영국 영사가 "영국인은 이 구역 땅을 빌려 살 수 있다"는 약속을 합니다. 이게 조계의 출생신고서예요.
처음엔 그냥 외국인 거주 구역이었어요. 그런데 한 번 선이 그어지자 다른 나라도 줄을 섭니다. 미국이 오고, 프랑스가 오고요.
동네가 '작은 나라'가 되기까지
1854년, 영국·미국 상인들이 '공부국(工部局)'을 만듭니다. 이름은 어렵지만, 그냥 '조계 시청'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이 시청이 하는 일이 점점 늘어납니다. 길 닦고, 쓰레기 치우고, 세금 걷고. 나중엔 경찰도, 소방대도 거느립니다.
재밌는 건 이 시청 의원 자리에 중국인은 오랫동안 앉을 수 없었다는 거예요. 중국 땅에서, 중국인이 대부분 사는 동네인데도요. 중국인 의원이 처음 들어간 건 70여 년이 지난 1928년입니다.
조계에서는 누구의 법이 적용됐나?
여기가 핵심입니다. 조계에서 다툼이 생기면 누가 판결했을까요?
답은 '피고가 누구냐'에 따라 달랐습니다.
- 피고가 외국인이면 — 그 나라 영사가 재판합니다. 영국인은 영국 법정, 미국인은 미국 법정에서요. 이걸 영사재판권이라고 해요. 청나라 법이 손을 못 대는 거죠.
- 피고가 중국인이면 — 조계 안에 따로 만든 법정에서 재판합니다. 판사는 청나라 관리였지만, 외국 영사관 사람이 옆자리에 앉아 지켜봤어요. 그래서 이름도 '섞인 법정(회심공해)'이었습니다.
내 집 마당에서 싸움이 났는데, 손님은 손님네 집안 어른이 혼내고 우리 식구는 손님이 지켜보는 앞에서 혼나는 셈입니다. 묘하죠.
이렇게 바깥 힘이 잘 닿지 않는 구역이라, 상하이 조계엔 온갖 사람이 모여들었어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문을 연 곳도 상하이 프랑스 조계였습니다.
그런데 관세는 누가 걷었을까?
관세사로서 꼭 짚고 싶은 반전이 하나 있습니다.
조계는 시청도, 경찰도, 법정도 따로 가졌어요. 그런데 상하이 항구로 들어오는 물건의 관세는 조계가 걷지 않았습니다. 청나라 세관(해관)이 걷었죠.
그 세관을 누가 운영했는지 기억하시나요? 3편 주인공, 영국인 로버트 하트입니다. 결국 상하이는 동네는 조계가, 세관은 외국인 책임자가 맡은 도시였던 셈이에요.
| 권한 | 상하이 조계 안에서는? |
|---|---|
| 행정 | 조계 시청(공부국) — 프랑스 조계는 따로 운영 |
| 경찰 | 조계가 직접 운영 |
| 재판 | 외국인 → 자기 나라 영사 / 중국인 → 섞인 법정 |
| 관세 | 청나라 세관 (책임자는 외국인 총세무사) |
그리고 인천에도 선이 그어졌다
이제 다시 인천 언덕으로 돌아와 볼게요.
1883년 인천항이 열리자 자리 잡기 경쟁이 시작됩니다. 제일 먼저 온 건 일본이었어요. 그해 9월이요.
이듬해 4월엔 청나라가 바로 옆에 자리를 잡습니다. 지금의 차이나타운, 그 출발점이 바로 여기예요.
10월엔 미국·영국·청·일본 등 여러 나라가 한 구역을 함께 쓰는 '각국조계'까지 생깁니다. 먼저 열린 부산·원산엔 없던 새로운 형태였어요. 한 동네에 여러 나라가 모여 사는 '국제 아파트'인 셈이죠.
각국조계 사람들은 '신동공사(紳董公司)'라는 자치 모임을 꾸렸습니다. 상하이 조계 시청의 인천판이라고 보면 돼요. 이들이 새 길을 닦고 가로등과 하수도를 놓았습니다. 인천이 빠르게 근대 도시 모습을 갖춘 데는 이런 배경도 있어요.

1890년대 인천 제물포, 청·일 조계를 가르던 계단 (AI 생성 이미지)
그 선은 지금 어디에 남아 있을까?
인천의 조계는 1914년, 행정구역이 바뀌면서 모두 사라집니다. 30년 만이에요. 상하이 조계는 훨씬 오래 버텨서 1940년대에야 막을 내립니다. 거의 100년이죠.
그런데 인천엔 선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어요.
차이나타운에서 자유공원 쪽으로 오르는 돌계단이 있습니다. 이 계단이 바로 청나라 조계와 일본 조계를 가르던 경계예요. 지금도 계단을 사이에 두고 한쪽엔 중국풍 건물이, 다른 쪽엔 일본풍 건물이 늘어서 있습니다.
다음에 짜장면 먹으러 가면 그 계단에 한번 서 보세요. 140년 전 지도 위에 서 있는 셈이니까요.
한눈에 보는 연표
| 연도 | 무슨 일이 있었나 | 어디서 |
|---|---|---|
| 1843 | 상하이 개항(11월 17일) | 상하이 |
| 1845 | 토지장정 — 영국 조계 시작(11월) | 상하이 |
| 1848 | 미국 조계 | 상하이 |
| 1849 | 프랑스 조계 | 상하이 |
| 1854 | 조계 시청(공부국) 설립(7월) | 상하이 |
| 1863 | 영국·미국 조계 합쳐 공공조계 | 상하이 |
| 1864 | 섞인 법정(회심공해) 설치 | 상하이 |
| 1883 | 인천 개항, 일본 조계(9월) | 인천 |
| 1884 | 청나라 조계(4월) — 차이나타운의 시작, 각국조계(10월) | 인천 |
| 1914 | 행정구역 개편으로 조계 폐지 | 인천 |
| 1919 | 대한민국 임시정부, 프랑스 조계에서 출범(4월) | 상하이 |
| 1943 | 조계 시청 해산, 상하이 조계 시대 끝 | 상하이 |
[관세사의 시선] 선을 긋는 것과 열쇠를 넘기는 것
오늘날에도 우리나라에는 보세구역과 자유무역지역이라는 특별한 구역이 있습니다. 외국 물품을 들여와 관세 납부를 미루고, 보관하거나 가공한 뒤 다시 수출할 수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우리나라 법은 그대로 적용됩니다. 세관이 관리하고, 경찰과 법원도 우리나라의 권한 아래 있습니다. 단지 세금 납부를 미뤄주는 것이지, 국가의 권한을 넘겨주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 과거의 조계는 달랐습니다. 관세는 청나라 해관이 징수했지만, 행정과 경찰권, 재판권은 외국이 행사했습니다.
오늘날의 보세구역이 무역의 편의를 위해 문을 열어준 것이라면, 과거의 조계는 집을 관리할 열쇠까지 외국에 넘겨준 셈입니다.
한 줄 요약
인천 차이나타운은 140년 전 청나라 조계에서 시작됐다. 조계는 남의 항구 안에 그어진 선이었고, 그 선 안에선 그 나라의 법도 경찰도 힘을 못 썼다.
다음 편 예고
청나라와 조선이 남에게 열쇠를 넘기는 동안, 똑같이 불평등조약을 맺은 일본은 그 열쇠를 되찾으려 애씁니다. 남이 정한 재판과 관세를 되찾기까지, 무려 53년. 다음 6편에서 이어집니다.
← 4편 강화도조약에 관세가 없었던 이유 · 6편 관세는 원래 마음대로 올릴 수 있나? — 일본이 53년 걸려 되찾은 '관세 자주권' →
함께 읽기: 3편 로버트 하트 — 남의 나라 세관을 48년 동안 운영한 영국인
참고자료
- 인천도시역사관, 「나라 안의 나라를 나눴던 각국조계석」
- 인천광역시, 인천지역유산 「각국 조계지 계단」·「인천 차이나타운 골목」
- 인천광역시, 「인천차이나타운 142년의 역사와 변천」(이정희, 국립인천대 중국학술원)
- 인천광역시 시사(市史), 「개항기」
- U.S. Department of State,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881 (상하이 회심공해 관련 문서)
- Minutes of the Shanghai Municipal Council, 1854–1943 (Shanghai Municipal Archives / Gale 해제)
- U.S. Naval Institute Proceedings (1932.12), "The Indefinite Status of Shanghai"
- 서울신문(2019.1.2),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해방구 佛조계지서 태동한 상하이 정부」
현직 관세사입니다. 「세계와 무역사」는 관세사의 눈으로 다시 읽는 인류 무역의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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