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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차는 왜 비쌀까 — 160년 전 런던 홍차 레이스에서 답을 찾다 시리즈: 세계와 무역사 · 개항과 근대 · 7편← 6편 관세는 원래 마음대로 올릴 수 있나?햇차가 비싼 건 '처음'이라는 이름값 때문입니다. 160년 전 런던 사람들도 그해 첫 홍차에 웃돈을 냈어요. 그 웃돈을 차지하려고 배들이 지구 반 바퀴를 달리는 경주까지 벌였죠.봄마다 "첫물 차", "우전" 같은 말이 붙은 차가 나오죠. 같은 차나무 잎인데 값은 몇 배입니다.와인 좋아하는 분이라면 보졸레 누보가 떠오를 거예요. 신형 휴대폰 첫날 매장 앞에 줄 서는 장면도 비슷하고요.사람들은 왜 '처음'에 돈을 더 낼까요? 이 질문의 답이 1866년, 중국에서 런던까지 99일 동안 벌어진 범선 경주에 있습니다.">시리즈: 세계와 무역사 · 개항과 근대 · 7편← 6편 관세는 원래 마음대로 올릴 수 있나?햇차가 비싼 ..
커피값은 왜 브라질 날씨에 출렁일까 — 300년 전 몰래 옮겨 심은 묘목에서 답을 찾다 시리즈: 세계와 무역사 · 물건의 무역사 · 2편← 1편 후추는 어떻게 식탁마다 놓이게 됐을까커피값이 브라질 날씨에 출렁이는 건, 세계 커피의 가장 큰 몫이 브라질 한 나라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원래 커피는 브라질 것이 아니었어요. 300년쯤 전, 묘목 몇 그루가 국경을 '몰래' 넘으면서 모든 게 시작됐습니다."브라질에 서리가 내려 원두값이 올랐다."카페 사장님들이 한숨 쉬는 뉴스죠. 지구 반대편 날씨가 왜 우리 동네 아메리카노 값을 흔들까요?답을 찾으려면 커피가 처음 국경을 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시리즈: 세계와 무역사 · 물건의 무역사 · 2편← 1편 후추는 어떻게 식탁마다 놓이게 됐을까커피값이 브라질 날씨에 출렁이는 건, 세계 커피의 가장 큰 몫이 브라질 한 나라에서 나오기 ..
관세는 원래 마음대로 올릴 수 있나? — 일본이 53년 걸려 되찾은 '관세 자주권' 시리즈: 세계와 무역사 · 개항과 근대 · 6편← 5편 인천 차이나타운은 왜 그 자리에 있을까지금은 나라마다 자기 법으로 관세를 정합니다. 이걸 '관세 자주권'이라고 해요. 그런데 170년 가까이 전 일본은 이 권리가 없었습니다. 서명 한 번에 넘어간 권리를 되찾는 데 1858년부터 1911년까지, 꼬박 53년이 걸렸어요.요즘 뉴스엔 "관세 인상"이란 말이 거의 매일 나오죠.그런데 문득 궁금해집니다. 관세는 원래 한 나라가 혼자 마음대로 올리고 내려도 되는 걸까요?답은 "원칙적으로는 각 나라가 정한다, 다만 스스로 한 약속 안에서"입니다. 그런데 그 약속조차 남이 정해 주던 시절이 있었어요. 오늘은 그 권리를 되찾으려고 반세기를 버틴 나라, 일본 이야기입니다.1859년 요코하마 개항, 세관(운상소) 앞 ..
후추는 어떻게 식탁마다 놓이게 됐을까 — 1,600년 전 로마의 몸값에서 답을 찾다 시리즈: 세계와 무역사 · 물건의 무역사 · 1편후추가 지금 식탁마다 있는 건, 바닷길이 열려 중간 상인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 전까지 후추는 도시 하나의 몸값으로 낼 만큼 귀한 물건이었어요.라면 끓일 때 톡톡, 계란 프라이에 톡톡.마트에서 몇천 원이면 한 통 사는 후추. 그런데 이 작은 알갱이가 한때는 금이나 은과 나란히 적히던 물건이었다면, 믿어지시나요?408년 로마가 바친 몸값 속 후추 (AI 생성 이미지)로마의 몸값에 들어간 후추서기 408년, 서고트족 왕 알라리크가 로마를 포위합니다.굶주린 로마는 결국 돈을 내고 포위를 풀어 달라고 하죠. 이때 몸값 목록이 기록에 남아 있어요. 금 5,000파운드, 은 30,000파운드, 비단 옷 4,000벌, 붉게 물들인 가죽 3,000장.그리고 마지막 줄..
인천 차이나타운은 왜 그 자리에 있을까 — 140년 전 조계지에서 답을 찾다 시리즈: 세계와 무역사 · 개항과 근대 · 5편← 4편 강화도조약에 관세가 없었던 이유인천 차이나타운은 1884년 청나라 '조계'가 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됐습니다. 조계는 남의 나라 항구 안에, 외국이 자기 규칙으로 다스리던 구역이에요. 그 원조는 40년 앞서 생긴 상하이 조계였습니다.주말에 짜장면 먹으러 가는 인천 차이나타운. 빨간 등이 걸린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문득 궁금해집니다.왜 하필 여기일까요? 서울도 아니고, 바닷가 언덕 한쪽에.답은 140여 년 전 지도에 있습니다. 그 시절 이 언덕엔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었거든요. 선 이쪽은 청나라 구역, 저쪽은 일본 구역. 조선 땅인데 조선 규칙이 잘 통하지 않는 곳이었어요.1880년대 인천 청나라 조계 거리, 지금의 차이나타운 자리 (AI 생..
강화도조약에 관세가 없었던 이유 시리즈: 세계와 무역사 · 개항과 근대 · 4편← 3편 로버트 하트 — 남의 나라 세관을 48년 동안 운영한 영국인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조선은 문을 열었는데, 정작 관세는 한 푼도 못 걷었습니다. 처음 세금을 걷어본 세관은 3개월 만에 문을 닫았고요. 제대로 된 세율표가 생긴 건 7년 뒤인 1883년입니다.지난달, 그러니까 2026년 9월 28일. 부산 동구 수정동에 돌 하나가 세워졌습니다. 관세청이 세운 '두모진 해관' 기념석이에요. 관세청은 이날을 아예 '세관의 날'로 만들겠다고 했습니다.대체 무슨 세관이길래 기념일까지 만들까요?딱 3개월 문을 열었던 세관입니다. 조선이 처음으로 "우리 문 앞에선 우리가 세금 걷겠다"고 나섰다가, 일본 군함을 보고 접어야 했던 곳이죠.3편에서 청나라 세관을 영국인..
로버트 하트 — 남의 나라 세관을 48년 동안 운영한 영국인 시리즈: 세계와 무역사 · 개항과 근대 · 3편← 2편 2차 아편전쟁 — 깃발 하나 때문에 베이징까지 쳐들어간 영국한 나라의 세관을 외국인이 책임진다면 어떨까요? 상상하기 어렵지만, 19세기 청나라에서는 실제로 그랬습니다. 그것도 약 반세기 동안이요.2편에서 아편전쟁에 진 청나라가 조약으로 관세율까지 묶였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번 편은 그 다음 이야기입니다. 청나라 세관, 즉 해관(海關, Chinese Maritime Customs Service)의 최고책임자 자리에 앉아 48년 동안 청의 관세를 걷은 영국인, 로버트 하트(Robert Hart)입니다.그리고 이 이야기는 뜻밖에도 조선의 세관으로 이어집니다.시작은 상하이, 주인 없는 세관에서">시리즈: 세계와 무역사 · 개항과 근대 · 3편← 2편 2..
2차 아편전쟁, 깃발 하나로 시작된 전쟁 시리즈: 세계와 무역사 · 개항과 근대 · 2편← 1편 영국이 중국에 아편을 팔 수밖에 없었던 이유 — 차 때문이다2차 아편전쟁(1856~1860)은 배 한 척의 깃발 문제로 시작해,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베이징을 점령하며 끝난 전쟁입니다. 이 전쟁으로 아편은 세금을 내는 합법 수입품이 됐고, 중국은 항구 10곳을 더 열었습니다.1차 아편전쟁이 끝났다고 다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1842년 난징조약. 영국은 홍콩을 얻고, 다섯 개 항구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영국 상인들의 표정이 영 시원찮았습니다."이게 다야?"중국 내륙으로는 여전히 들어갈 수 없고, 아편은 여전히 밀수품 취급이고, 베이징에는 공사관 하나 세울 수 없었습니다. 14년 동안 불만은 쌓여만 갔습니다. 영국은 '조약 개정'을..